<나카미세>의 내력
나카미세는 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상가의 하나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개설한 후에 에도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센소지」에로의 참배가 한층 활기차게 되는데 따라 센소지 경내청소의 부역이 부과되여있던 사람들에게 경내나 참배길에 노점이나 가게를 낼 특권이 주어졌습니다.이것이 나카미세 역사의 시작이고 시대적으로는 겐로쿠,교호(1688-1735)당시라고 전해집니다.
에도시대에는 덴포인부터 인왕문가까이에 있는 가게를 야쿠다나라고 불러 20채의 노점(찻집)이 줄섰고 가미나리문 가까운 가게는 히라미세라 불러 장난감,과자,선물품 등을 팔아 점차 가게도 늘어 나면서 일본에서 가장 형태가 갖추어진 몬젠쵸에로 발전해갔습니다.
메이지 유신의 정변에 의해 절이나 신사가 소유했던 영지가 정부에 몰수되여 센소지의 경내도 도쿄부(오늘의 도쿄토)의 관할에 놓인 후, 정부는 새로 도쿄에 5공원을 만들어 공원법을 제정하여 이전부터의 모든 권리를 나카미세부터 몰수하였습니다.
메이지 18년 5월 (1885) 도쿄부가 내린 나카미세 전 가게의 철
거의 명에 울어 퇴거한 후 같은 해 12월에 벽돌 구조의 서양식
새 점포를 완성하는 것으로 근대 나카미세가 탄생하였습니다.
다이쇼 이후의 나카미세
문명개화,메이지의 냄새를 둔 빨간 벽돌의 나카미세도 다이쇼 12년의 관동대진재에 의해 무너져 없어지고 같은 해 14년에 오늘의 철
근 콘크리트 구조,모모야마풍 주홍색칠의 아담한 상가로 다시 태여났습
니다.
그 건물도 쇼와 20년의 전재로 내부는 소실했으나 나카미세사람들
의 노력으로 재빨리 부흥하였으며 쇼와 60년 가을에는 근대 나카미
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전광장식의 개수,참배길의 포석을 새로 까는 등 다양한 행사로 축하하였습니다.
헤이세이 원년 4월에는 도쿄예술대학 히라야마 이쿠오교수의 지도하의 구룹에 의해 <아사쿠사 에마키(그림 두루마리)>란 이름으로 모든 점포의 셔터에 아사쿠사의 년중행사를 그려냄으로써 아사쿠사 상가의 면모를 새로했습니다.
이어 헤이세이 4년 11월의 건물외관을 바꿔 발라 간판류도 개수
공사하는 리프레쉬 사업의 완성, 2년후의 헤이세이 6년 10월에는
도쿄전력의 협력하에 「전주 철거 지중선화」도 완성시켜 산뜻한 나카미세로 변하였습니다.
또한 헤이세이 8년 12월에는 아사쿠사시내 상가중에서 처음으로
나카미세 거리에 「방범카머라」를 설치함으로 하여 경찰서에서 감사장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나카미세
오늘의 나카미세는 동측에 54점,서측에 89점의 점포가 있어 길이는 250미터나 됩니다.
사철마다 계절을 즐기게 멋지게 꾸며진 거리장식과 밤이면 아름다운 통일전광장식이 포석에 비치니 가미나리문을 들어선 해외손님들은 휼륭한 일본식정서에 저마다 『원더풀』을 연발하십니다.